KIA 타이거즈/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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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 등번호 목록 [편집]
KIA 타이거즈 2025 시즌 선수단 배번 현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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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KIA 커리어만으로 스탯티즈 기준 WAR 10 이상을 달성한 경우,[1]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경우, 정규시즌 혹은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된 경우, KBO 골든글러브 혹은 신인왕을 수상한 경우, KBO 개인 타이틀홀더를 1번 이상 달성한 경우, 감독으로써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경우 중 하나라도 속하는 선수는 볼드체 처리.
범죄 이력이 있거나 심한 물의를 일으킨 선수, 등번호 사용을 취소한 선수는취소선처리.
KIA 타이거즈 | ||
등번호 | 역대 선수 목록 | 현재 선수 |
0 | 곽도규(2024~) | |
1 | 박찬호(2022~) | |
2 | 박민(2025~) | |
3 | ||
4 | 유지성(2023~) | |
5 | 김도영(2022~) | |
6 | ||
[[이종범|{{{#c8ab37 7}}}]] | [[영구 결번/KBO 리그|{{{#c8ab37 영구 결번}}}]] | |
8 | 이창진(2024~) | |
9 | 강정남(1984)→장진범(1985~1987)→백인호(1989)→이건열(1990~1997)→송구홍(1998~1999.4.15.)→박계원(1999.4.16.~2000.6.1.)→김호(2000.6.2.~2000)→김민철(2001~2006)→김연훈(2007~2008.5.4.)→김형철(2008.5.5.~2010)→김주형(2011~2012)→장시하(2013)→ 김민우(2014~2016)→오준혁(2017~2018.6.7.)→이창진(2018.6.8.~2018)→윤해진(2019)→맷 윌리엄스(2020~2021)→류승현(2022)→곽도규(2023)→오정환(2024) | 윤도현(2025~) |
10 | 김태형(2025~) | |
11 | 조상우(2025~) | |
12 | 정현창(2025.7.28.~) | |
13 | 윤영철(2023~) | |
14 | 김규성(2023~) | |
15 | 박정우(2024~) | |
16 | ||
17 | 임기영(2020~) | |
[[선동열|{{{#c8ab37 18}}}]] | [[영구 결번/KBO 리그|{{{#c8ab37 영구 결번}}}]] | |
19 | 윤중현(2021.5.11.~) | |
20 | 이준영(2021.3.18~) | |
21 | 김사윤(2023~) | |
22 | 주효상(2023~) | |
23 | 최정용(2022~) | |
24 | 김승현(2023~) | |
25 | 한재승(2025.7.28.~) | |
26 | 한승택(2023~) | |
27 | 김호령(2022~) | |
28 | 이형범(2025~) | |
29 | 변우혁(2024~) | |
30 | 홍원빈(2025.5.30.~) | |
31 | 박준표(2019~) | |
32 | 김현수(2024~) | |
33 | 아담 올러(2025~) | |
34 | 최형우(2017~) | |
35 | 김석환(2022~) | |
36 | 박재현(2025~) | |
37 | 강동훈(2025~) | |
38 | 장재혁(2025~) | |
39 | 최지민(2022~) | |
40 | 제임스 네일(2024~) | |
41 | 황동하(2024~) | |
42 | 김태군(2023.7.31.~) | |
43 | 김건국(2023.6.29.~) | |
44 | 송일섭(1983~1988.6.29.)→문승훈(1989~1992)→이병훈(1994~1996.5.24.)→동봉철(1996.5.25.~1996)→김창희(1997~2002)→권희석(2004~2006)→문현정(2007~2008)→아킬리노 로페즈(2009~2011)→앤서니 르루(2012~2013.7.23.)→듀웨인 빌로우(2013.8.6.~2013)→박성호(2014)→오두철(2015)→신창호(2016.6.30.~2016)→이정훈(2017)→박준표(2018.10.11.~2018)→한준수(2019~2020)→김석환(2021.7.20~2021)→권혁경(2022) | 이상준(2024~) |
45 | 정유복(1988~1991)→이민호(1993~1996)→최철민(1997)→숀 헤어(1998)→엄병열(1999~2001)→장준영(2002~2004)→이대진(2005~2011.7.22.)→송산(2011.8.~2011)→박준수(2012)→박찬(2013)→김영광(2014~2014.4.9.)→김병현(2014.4.10.~2016)→팻 딘(2017~2018)→장지수(2019)→양승철(2020)→박건우(2021)→로니 윌리엄스(2022~2022.6.27.)→토마스 파노니(2022.7.4.~2022)→아도니스 메디나(2023~2023.7.3.)→토마스 파노니(2023.7.11~2023)→김민주(2024) | 패트릭 위즈덤(2025~) |
46 | 김정엽(2025~) | |
47 | 나성범(2022~) | |
48 | 이의리(2021~) | |
49 | 강상진(1986~1988)→김재덕(1991~1998)→김자윤(1999~2000)→게리 레스(2001)→신용운(2002~2003)→마해영(2004~2005)→주창훈(2006)→래리 서튼(2007~2007.5.20.)→펠릭스 로드리게스(2007.5.24.~2007)→윌슨 발데스(2008~2008.5.26)→케인 데이비스(2008.7.4.~2008)→이동현(2009~2010.6.7.)→박성호(2010.6.8.~2010)→김진우(2011~2014)→박성호(2015~2015.5.5.)→ | 김민주(2025~) |
50 | 유승철(2025~) | |
51 | 전상현(2020.6.16.~) | |
52 | 황대인(2021~) | |
53 | 김정기(1989)→김명환(1994~1995)→지승준(1997~1999)→ 루이스 안두하(2001)→마크 키퍼(2002~2003.7.8.)→마이크 존슨(2003.7.9.~2003)→훌리오 마뇽(2004)→마이크 존슨(2005~2005.5.4.)→매트 블랭크(2005.5.26.~2005)→박경태(2006~2008)→윤효섭(2009~2012)→이종환(2012.9.9.~2013)→이대형(2014)→김호령(2015~2017)→김지성(2018~2018.4.29.)→박준태(2018.5.21.~2019)→김호령(2020~2021)→최정민(2022~2022.7.7.) | 김기훈(2022.9.22~) |
54 | ||
55 | 한준수(2023.6.25.~) | |
56 | 오선우(2023~) | |
57 | 고종욱(2022~) | |
58 | 서건창(2024~) | |
59 | 남상현(1990~1991)→박철호(1994~1995)→류기중(1997~2000)→가내영(2001.5.31.~2001)→다니엘 리오스(2002~2005.7.9.)→세스 그레이싱어(2005.7.11.~2006)→세스 에서튼(2007~2007.5.10.)→제이슨 스코비(2007.5.18.~2007)→이성우(2008)→현승민(2009)→최훈락(2010~2014)→필립 험버(2015~2015.7.19.)→전우엽(2015.7.20.~2015)→정동현(2016~2017)→김유신(2018)→오선우(2019.5.1.~2021)→강병우(2022)→정해원(2023~2024) | 양수호(2025~) |
60 | 김도현(2024.5.3.~) | |
61 | 김시훈(2025.7.28.~) | |
62 | 정해영(2020~) | |
63 | 이호민(2025~) | |
64 | 정해원(2025.5.5.~) | |
65 | 성영탁(2025.5.20.~) | |
66 | 이도현(2025.6.28.~) | |
67 | ||
68 | 손승락(2023~) | |
69 | 김대유(2023~) | |
70 | 진갑용(2020~) | |
71 | 이범호(2021~) | |
72 | ||
73 | 정재훈(2024~) | |
74 | 박기남(2025~) | |
75 | 조재영(2023~) | |
76 | 김주찬(2025~) | |
77 | 홍세완(2023~) | |
78 | 최희섭(2020~) | |
79 | 이정호(2023~) | |
80 | 이현곤(2020~) | |
81 | 윤해진(2020~) | |
82 | ||
83 | 나카무라 타케시(2024~) | |
84 | ||
85 | 이동걸(2024~) | |
86 | ||
87 | 이해창(2023~) | |
88 | ||
89 | 조승범(2025~) | |
90 | 박효일(2023~) | |
91 | 김석연(2024~) | |
92 | ||
93 | 서덕원(2024~) | |
94 | ||
95 | ||
96 | ||
97 | 이상화(2021~) | |
98 | ||
99 | 김민우(2025~) | |
00 | 정윤현(1997)→이동수→김준무(2008)→이호신(2012~2014) | |
01 | 장시현(2023.7.1~) | |
02 | 강이준(2025~) | |
03 | 박건우(2024~) | |
04 | 김민수(2022~) | |
05 | 박상준(2024~) | |
06 | 장민기(2025~) | |
07 | 오정환(2025~) | |
08 | 예진원(2025~) | |
09 | 이영재(2024~) | |
010 | 김재현(2024~) | |
011 | 이준범(2021~2022, 2024~) | |
012 | 강병우(2025~) | |
013 | 강민제(2025~) | |
014 | 이승재(2024~) | |
015 | ||
016 | 김선우(2025.6.19.~) | |
017 | 김세일(2025~) | |
018 | 김경묵(2025~) | |
019 | ||
020 | 권다결(2024~) | |
021 | ||
022 | ||
023 | ||
024 | ||
025 | ||
026 | ||
027 | ||
028 | 최건희(2025~) | |
029 | 나연우(2025~) | |
030 | 임다온(2025~) | |
031 | 엄준현(2025~) | |
032 | 이성원(2025~) | |
033 | ||
034 | ||
035 | ||
036 | 박헌(2025~) | |
037 | 한승연(2025~) | |
038 | ||
039 | ||
040 | ||
041 | ||
042 | 박효일(2017) | |
043 | 임기영(2016) | |
044 | ||
045 | 김양수(2025~) | |
046 | ||
047 | ||
048 | 민경남(2017) | |
049 | 손진규(2022) | |
050 | 조대현(2025~) | |
100 | ||
101 | 김광연(2013)→박세민(2014)→최규상(2015~2024) | |
102 | 이은총(2014)→이인주(2015)→배동준(2016)→이진우(2017~2022) | 김용진(2024~) |
103 | 박창수(2024~) | |
104 | 배장원(2013)→박찬(2014)→신용진(2015~2022) | |
105 | ||
106 | 이동훈(2013)→우경삼(2014) | 목고협(2017~) |
107 | 정상훈(2024~) | |
108 | 김승현(2013)→이다샘(2014)→김학원(2017~2018) | 윤용준(2019~) |
109 | 정우빈(2025~) | |
110 | 박효승(2013~2014) | |
111 | 유휘봉(2013~2014) | |
112 | 현천웅(2013~2014) | |
113 | 박정훈(2013)→정정환(2014) | |
114 | 서명지(2014) | |
115 | 이현우(2014) | |
116 | 오두철(2014) | |
117 | 장운영(2014) | |
118 | 최현정(2014) | |
119 | 윤효섭(2014) |
2. 초창기 등번호 구분 [편집]
1990년대 초만 해도 감독인 김동엽 - 김응용이 38 - 39번을 달고 있었던 관계로 전 코칭스태프가 30번대 등번호를 달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1~30번은 1군급, 40번대 이후는 2군급이 다는 등번호로 구분을 지었다. 그래서 당시 해태는 등번호만으로도 그 선수가 주전급인지 후보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예외는 44번을 달았던 좌타자 송일섭과 47번을 단 좌투수 김정수 정도가 있다.
1996년부터 선수단 규모가 커지면서 이러한 구분이 사라졌다. 다만 30번대 이후 등번호를 다는 선수들은 거의 2군 선수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 시절에도 예외라면 37번 임창용, 38번 이호준, 44번 김창희, 47번 김정수 4명 정도에 불과했다.
1996년부터 선수단 규모가 커지면서 이러한 구분이 사라졌다. 다만 30번대 이후 등번호를 다는 선수들은 거의 2군 선수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 시절에도 예외라면 37번 임창용, 38번 이호준, 44번 김창희, 47번 김정수 4명 정도에 불과했다.
3. 주요 등번호 [편집]
이 단락에서는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주요 등번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영구 결번이나 주요 계보 선수들에 대한 설명을 이곳에 붙인다.
더 많은 등번호는 위의 '역대 등번호 목록'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더 많은 등번호는 위의 '역대 등번호 목록'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3.1. 1 [편집]
장성호의 등번호. 장성호가 오랫동안 달았지만[8] 장성호의 트레이드 맞상대였던 안영명 이후에는 투수들이 달은 상태. 1980년대에는 원조 도루왕으로 유명한 김일권이 달기도 했고 잠시 동안 조충열이 달았었다.[9]
이후 이범석이 달고 있었지만, 오랜 재활로 인해 신고선수로 전환 되면서 심동섭이 가져갔다. 2019년 심동섭이 군대에 가면서 최원준이 이 번호를 가져갔다가 심동섭이 21시즌에 복귀하면서 다시 1번을 달게 되었는데 시즌 막바지에 방출됐고 박찬호가 2022년부터 이 번호를 달고 뛰었고 2024년엔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후 이범석이 달고 있었지만, 오랜 재활로 인해 신고선수로 전환 되면서 심동섭이 가져갔다. 2019년 심동섭이 군대에 가면서 최원준이 이 번호를 가져갔다가 심동섭이 21시즌에 복귀하면서 다시 1번을 달게 되었는데 시즌 막바지에 방출됐고 박찬호가 2022년부터 이 번호를 달고 뛰었고 2024년엔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3.2. 2 [편집]
3.3. 3 [편집]
원년~1980년대에는 조충열의 등번호였다. 1994년 한대화의 트레이드 상대가 되어 나름 기대를 받고 입단한 김상훈이 이 번호를 달았다.
이후에는 그저그런 선수들이 다는 등번호였다가 2008년부터는 주전 유격수로 거듭난 김선빈이 달았다. 김선빈은 2014년까지 이 번호를 사용한 이후 상무에서의 군복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김기태 감독의 지시로 김선빈의 군 복무 공백 기간 동안 아무도 이 번호를 달지 않도록 임시결번 처리를 해 둔 덕분에 김선빈이 타 팀으로 옮기거나 본인 스스로 등번호를 바꿔 달지 않는 한 3번을 그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김선빈이 2016년 9월 상무에서 전역한 이후 다시 이 번호를 달면서 현재까지 김선빈이 사용하고 있는 번호다.
이후에는 그저그런 선수들이 다는 등번호였다가 2008년부터는 주전 유격수로 거듭난 김선빈이 달았다. 김선빈은 2014년까지 이 번호를 사용한 이후 상무에서의 군복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김기태 감독의 지시로 김선빈의 군 복무 공백 기간 동안 아무도 이 번호를 달지 않도록 임시결번 처리를 해 둔 덕분에 김선빈이 타 팀으로 옮기거나 본인 스스로 등번호를 바꿔 달지 않는 한 3번을 그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김선빈이 2016년 9월 상무에서 전역한 이후 다시 이 번호를 달면서 현재까지 김선빈이 사용하고 있는 번호다.
3.4. 5 [편집]
5번이라는 번호 답게 3루수들이 달았던 번호. 다만 원년에는 2루수 차영화가 달았었다. 차영화가 1989년을 끝으로 은퇴함과 동시에 1990년에 광주상고를 졸업하고 고졸연고 자유계약을 통해서 입단한 홍현우가 11년간 달았다. 홍현우는 주전 2루수와 3루수를 오갔으며, 중심타자로서 해태를 4번 정상에 올려놓았다.[10]
홍현우의 FA 이적 이후 정성훈이, 정성훈이 이적한 이후에는 1차 지명으로 뽑은 김주형이 달았다. 김주형이 33번으로 바꾼 후에는 탈쥐효과의 산 증인인 손지환이 달았고, 이후에는 손지환의 트레이드 상대인 유용목이, 유용목이 입대한 후에는 내야 유틸리티인 홍재호와 황정립이 달면서 내야수를 상징하는 등번호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황정립이 방출된 후에는 롯데 출신의 백세웅이 달았다가, 2016년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달았다가 군에 입대하면서 2017년에는 김지성이 달고 있다. 정성훈이 기아로 돌아오긴 했지만, 56번을 달면서 5번은 홍재호가 다시 가져갔다. 2019년에는 외인타자 제레미 해즐베이커가 달았다가 방출되었고, 그 뒤 NC에서 트레이드로 건너온 이우성이 달았고,[11] 2020년에는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다시 찾아갔다. 2021년에는 김태진이 이 번호를 달았다. 2022년에는 타자 최대 유망주 김도영이 달게 되었다. 그리고 김도영은 24시즌 3루수 골든글러브와 리그 MVP를 받으며 차기 프랜차이즈 선수로 자리잡았다.
홍현우의 FA 이적 이후 정성훈이, 정성훈이 이적한 이후에는 1차 지명으로 뽑은 김주형이 달았다. 김주형이 33번으로 바꾼 후에는 탈쥐효과의 산 증인인 손지환이 달았고, 이후에는 손지환의 트레이드 상대인 유용목이, 유용목이 입대한 후에는 내야 유틸리티인 홍재호와 황정립이 달면서 내야수를 상징하는 등번호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황정립이 방출된 후에는 롯데 출신의 백세웅이 달았다가, 2016년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달았다가 군에 입대하면서 2017년에는 김지성이 달고 있다. 정성훈이 기아로 돌아오긴 했지만, 56번을 달면서 5번은 홍재호가 다시 가져갔다. 2019년에는 외인타자 제레미 해즐베이커가 달았다가 방출되었고, 그 뒤 NC에서 트레이드로 건너온 이우성이 달았고,[11] 2020년에는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다시 찾아갔다. 2021년에는 김태진이 이 번호를 달았다. 2022년에는 타자 최대 유망주 김도영이 달게 되었다. 그리고 김도영은 24시즌 3루수 골든글러브와 리그 MVP를 받으며 차기 프랜차이즈 선수로 자리잡았다.
3.5. 7 [편집]
타이거즈에서 등번호 7번의 대표적 주인공은 딱 2명으로 압축된다. 1980년대의 타이거즈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김종모, 김종모 이후의 타이거즈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이종범이다.
프로 원년 외야수 김종모가 처음 달았다. 김종모는 선수로서 6번의 우승을 이끈 것은 물론 골든글러브 4번을 수상했다. 1992년을 끝으로 김종모의 은퇴했고, 1993년에 1차 지명으로 뽑은 나타난 유격수 이종범이 달았다. 해태 시절 이종범의 활약상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탓에 그의 등번호 7번은 대한민국 대표 유격수의 상징으로[12] 굳어진 번호가 됐다.
이종범이 주니치 드래곤즈에 임대된 이후 1999년에 입단한 외야수 장일현이 이종범의 공백기간 동안인 1998~2000시즌에 단 적이 있었지만 2001년 KIA 타이거즈가 재창단되면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종범이 다시 달았다.[13] 타이거즈 내에서는 이종범의 이름으로 KBO 영구 결번으로 지정. 다시 말해서 7번 유니폼을 달고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선수는 김종모, 이종범, 장일현 단 세 명뿐이다.
프로 원년 외야수 김종모가 처음 달았다. 김종모는 선수로서 6번의 우승을 이끈 것은 물론 골든글러브 4번을 수상했다. 1992년을 끝으로 김종모의 은퇴했고, 1993년에 1차 지명으로 뽑은 나타난 유격수 이종범이 달았다. 해태 시절 이종범의 활약상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탓에 그의 등번호 7번은 대한민국 대표 유격수의 상징으로[12] 굳어진 번호가 됐다.
이종범이 주니치 드래곤즈에 임대된 이후 1999년에 입단한 외야수 장일현이 이종범의 공백기간 동안인 1998~2000시즌에 단 적이 있었지만 2001년 KIA 타이거즈가 재창단되면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종범이 다시 달았다.[13] 타이거즈 내에서는 이종범의 이름으로 KBO 영구 결번으로 지정. 다시 말해서 7번 유니폼을 달고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선수는 김종모, 이종범, 장일현 단 세 명뿐이다.
3.6. 8 [편집]
이 번호는 OB 베어스에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한 뒤 활발한 모습을 보였던 '원조 타이거즈 해결사' 3루수 한대화의 등번호로 유명하다. 한대화의 LG 트윈스 이적 후에는 난청을 앓고 있음에도[14] 2차례나 지명타자 골든글러브[15]를 수상한 박재용이, 박재용의 쌍방울 이적 후에는 양현석이 이 등번호를 달았었다. 양현석의 후임으로는 트레이드로 합류했으며 훗날 흑역사 단장인 장정석이 선수 시절에 달았다.
KIA 팬들에게 가장 익숙할법한 선수는 2009년 신인으로 들어와 2019년까지 이 번호를 달았던 2루수 안치홍. 2014 시즌 이후 군복무에 들어간 뒤에 김광연이 임시로 달기도 했으나 김기태 감독의 지시로 군 복무 공백 기간 동안에 아무도 이 번호를 달지 않도록 지침을 내리면서 안치홍이 타 팀으로 옮기거나 본인 스스로 등번호를 바꿔 달지 않는 한 8번을 그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19 시즌이 끝난 후 FA 계약으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2020년 두산 베어스의 류지혁이 홍건희와의 1:1 트레이드로 이적해오며 홍건희의 번호인 51번을 임시로 사용하다가[16] 6월 16일 류지혁이 8번을 가져갔다. 이후 2023년 7월 5일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8번을 사용했다.
이후 류지혁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입단한 김태군이 8번의 주인이 되었고 김태군과 김선우가 등번호를 맞바꿔 김선우가 8번을 이어받았으며 시즌 종료 후 김선우가 상무에 입대하게 되면서 공석이었던 자리에 이창진이 2024시즌부터 8번을 달기로 하였다.
KIA 팬들에게 가장 익숙할법한 선수는 2009년 신인으로 들어와 2019년까지 이 번호를 달았던 2루수 안치홍. 2014 시즌 이후 군복무에 들어간 뒤에 김광연이 임시로 달기도 했으나 김기태 감독의 지시로 군 복무 공백 기간 동안에 아무도 이 번호를 달지 않도록 지침을 내리면서 안치홍이 타 팀으로 옮기거나 본인 스스로 등번호를 바꿔 달지 않는 한 8번을 그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19 시즌이 끝난 후 FA 계약으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2020년 두산 베어스의 류지혁이 홍건희와의 1:1 트레이드로 이적해오며 홍건희의 번호인 51번을 임시로 사용하다가[16] 6월 16일 류지혁이 8번을 가져갔다. 이후 2023년 7월 5일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8번을 사용했다.
이후 류지혁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입단한 김태군이 8번의 주인이 되었고 김태군과 김선우가 등번호를 맞바꿔 김선우가 8번을 이어받았으며 시즌 종료 후 김선우가 상무에 입대하게 되면서 공석이었던 자리에 이창진이 2024시즌부터 8번을 달기로 하였다.
3.7. 9 [편집]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유틸리티맨으로 활약하며 7번의 우승에 기여한 이건열이 달았던 번호[17]. 다만 9번 자체를 달았던 선수들 중에서 잘 알려진 선수가 딱히 없다. 송구홍, 박계원, 김호 같은 내야수들이 달기는 했지만 셋 다 타팀의 색깔이 더 강하고 타이거즈를 일찍 떠나면서 팀에서 남긴 족적은 거의 없다시피한 수준.
2000년대 들어서 김연훈이 달았으나 SK로 팔려갔고 반대급부로 온 김형철은 2군에서만 뛰다가 사라졌다. 김주형이 2011년부터 2년간 달았지만, 여전히 짐짝 수준의 성적만 내는 신세. 이후 김민우 - 오준혁 - 이창진이 달았지만, 9번을 달고 보여준 모습은 별로 적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는 타이거즈 제9대 감독 맷 윌리엄스가 사용했다. 2022년에는 류승현이 달았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고 2023년 시즌에는 신인 곽도규가 1년간 달았다.
2025 시즌에는 윤도현이 조상우에게 원래 번호인 11번을 양보하며 달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김연훈이 달았으나 SK로 팔려갔고 반대급부로 온 김형철은 2군에서만 뛰다가 사라졌다. 김주형이 2011년부터 2년간 달았지만, 여전히 짐짝 수준의 성적만 내는 신세. 이후 김민우 - 오준혁 - 이창진이 달았지만, 9번을 달고 보여준 모습은 별로 적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는 타이거즈 제9대 감독 맷 윌리엄스가 사용했다. 2022년에는 류승현이 달았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고 2023년 시즌에는 신인 곽도규가 1년간 달았다.
2025 시즌에는 윤도현이 조상우에게 원래 번호인 11번을 양보하며 달게 되었다.
3.8. 10 [편집]
여러 선수가 거쳐간 번호. 80년대에는 김준환이 달았고 김준환의 은퇴 및 쌍방울 코치 부임 이후에는 이광우가 달았다.
이광우가 박노준과 트레이드 되어 OB로 넘어가면서 1년간 박노준이 달았으나 정작 박노준은 부진하다가 쌍방울로 넘어갔다. 이후 3년간 정성룡, 신인때 1년간 장성호, 2년간 최훈재, 1년간 양준혁이 10번을 다는 등 90년대에만 무려 6명의 선수가 10번을 달았다. 역대 안타 부문 1,2위에 랭크된 양준혁과 장성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거리. 결정적으로 이 선수들은 전부 좌타자였기 때문에 10번은 사실상 좌타자 전용 등번호에 가까웠다.[18]
양준혁이 LG로 떠난 이후 1년간 비워두었다가 김경언이 잠시 달았으나, 얼마 못 가서 24번으로 변경. 서동욱이 6번에서 10번으로 바꿨지만 1년도 못 가서 트레이드로 팔려갔다. 이후 한기주가 전성기 시절에 이 번호를 달았다. 다만 한기주 이후에는 고만고만한 선수들만 달았다.
2015년에는 고졸 신인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고교 시절에도 10번을 달았는데, 이는 KIA에서 황대인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2016년에는 박진두가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2017년-2018년에는 김석환이 이 번호를 달았으나 황대인이 상무에서 전역하며 2019년에 다시 이 번호를 달았다. 2020년부터는 외야수 이진영이 이 번호를 달았고 2022년 트레이드되면서 공번이 되었으나 다음날 트레이드된 박동원이 다시 달게 되었다. 박동원이 FA로 떠나면서 2023년부터 신인 황동하가 달다가 유승철이 2024 시즌부터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2014년 강한울 이후로 주로 신인급 선수들이 달고 있는데, 2023년 이후부터 어째선지 투수들이 많이 쓴다.[19]
현재는 2025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기아에 오게된 김태형이 달고있다.
이광우가 박노준과 트레이드 되어 OB로 넘어가면서 1년간 박노준이 달았으나 정작 박노준은 부진하다가 쌍방울로 넘어갔다. 이후 3년간 정성룡, 신인때 1년간 장성호, 2년간 최훈재, 1년간 양준혁이 10번을 다는 등 90년대에만 무려 6명의 선수가 10번을 달았다. 역대 안타 부문 1,2위에 랭크된 양준혁과 장성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거리. 결정적으로 이 선수들은 전부 좌타자였기 때문에 10번은 사실상 좌타자 전용 등번호에 가까웠다.[18]
양준혁이 LG로 떠난 이후 1년간 비워두었다가 김경언이 잠시 달았으나, 얼마 못 가서 24번으로 변경. 서동욱이 6번에서 10번으로 바꿨지만 1년도 못 가서 트레이드로 팔려갔다. 이후 한기주가 전성기 시절에 이 번호를 달았다. 다만 한기주 이후에는 고만고만한 선수들만 달았다.
2015년에는 고졸 신인 황대인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고교 시절에도 10번을 달았는데, 이는 KIA에서 황대인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2016년에는 박진두가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2017년-2018년에는 김석환이 이 번호를 달았으나 황대인이 상무에서 전역하며 2019년에 다시 이 번호를 달았다. 2020년부터는 외야수 이진영이 이 번호를 달았고 2022년 트레이드되면서 공번이 되었으나 다음날 트레이드된 박동원이 다시 달게 되었다. 박동원이 FA로 떠나면서 2023년부터 신인 황동하가 달다가 유승철이 2024 시즌부터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2014년 강한울 이후로 주로 신인급 선수들이 달고 있는데, 2023년 이후부터 어째선지 투수들이 많이 쓴다.[19]
현재는 2025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기아에 오게된 김태형이 달고있다.
3.9. 11 [편집]
원년에는 '오리궁뎅이' 김성한을 상징하는 대표 번호였고, 그로 인해 아직까지 올드 팬에게는 김성한의 등번호로 기억되고 있다. 타이거즈 내에서 김성한의 위상을 생각하면 영구 결번도 가능했지만, 이뤄지지는 않았다.[20]
김성한의 뒤를 이어 11번을 단 선수는 '아기호랑이'라는 별명으로 차기 에이스감으로 꼽히던 김상진. 헌데 위암으로 요절한 김상진의 비운과 연계되어서인지 비운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그래선지 김상진 이후로 이 번호를 단 투수들은 하나같이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2000년부터 이대진이 4년간 달았지만 2000년에 비정상적인 혹사를 당한 이후에는 계속 2군에서 재활만 하던 신세.[21] 후배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번호를 45번으로 바꾸면서 빠졌다.
이후 11번을 받은 임준혁은 만년 2군 신세, 문현정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방출되었다.[22]
2012년부터는 2012년 신인 좌완투수인 임준섭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가, 2015년에는 임준섭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면서 같은 번호를 썼던 반대급부 선수였던 김광수가 이 등번호를 받았다. 2016년에는 한화에서 트레이드 된유창식이 이 등번호를 달게 됐다. 그리고 유창식이 승부조작에 연루되고, 김광수가 2017시즌 부진의 늪에 빠지며 방출을 당하는 등 11번의 저주는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2017 시즌에는 김진우 선수가 이 등번호를 달게 되었다. 그러나 11번의 저주는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2017시즌 연습경기에서 무릎에 강습타구를 맞기도 했고, 시범경기 때는 마운드에 오르기 전 몸을 풀다가 오른쪽 늑골 염좌 진단을 받기도 했다. 부상도 당했고 성적도 좋지 않아 FA 자격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데다가 '짐진우'라는 안 좋은 별명까지 얻었다. 결국 김진우가 2018시즌 육성선수로 전환되면서 한 해 동안 비었다가 2020시즌부터 이민우가 이 번호를 달았고 2022년 이민우가 한화로 트레이드되면서 트레이드 상대인 김도현이 이 번호를 받았으며, 김도현이 시즌 도중 입대한 후에는 전역 후 복귀한 송후섭이 정식선수로 전환되면서 등번호를 물려받았지만, 2023시즌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윤도현이 이어받게 되었다.
윤도현은 2024시즌 내내 만성적인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정규리그 우승 후 콜업되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시즌 후 트레이드되어 KIA로 온 조상우에게 11번을 양보하며 2025시즌부터는 조상우가 이 번호를 달고 뛰게 됐다.
김성한의 뒤를 이어 11번을 단 선수는 '아기호랑이'라는 별명으로 차기 에이스감으로 꼽히던 김상진. 헌데 위암으로 요절한 김상진의 비운과 연계되어서인지 비운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그래선지 김상진 이후로 이 번호를 단 투수들은 하나같이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2000년부터 이대진이 4년간 달았지만 2000년에 비정상적인 혹사를 당한 이후에는 계속 2군에서 재활만 하던 신세.[21] 후배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번호를 45번으로 바꾸면서 빠졌다.
이후 11번을 받은 임준혁은 만년 2군 신세, 문현정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방출되었다.[22]
2012년부터는 2012년 신인 좌완투수인 임준섭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가, 2015년에는 임준섭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면서 같은 번호를 썼던 반대급부 선수였던 김광수가 이 등번호를 받았다. 2016년에는 한화에서 트레이드 된
2017 시즌에는 김진우 선수가 이 등번호를 달게 되었다. 그러나 11번의 저주는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2017시즌 연습경기에서 무릎에 강습타구를 맞기도 했고, 시범경기 때는 마운드에 오르기 전 몸을 풀다가 오른쪽 늑골 염좌 진단을 받기도 했다. 부상도 당했고 성적도 좋지 않아 FA 자격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데다가 '짐진우'라는 안 좋은 별명까지 얻었다. 결국 김진우가 2018시즌 육성선수로 전환되면서 한 해 동안 비었다가 2020시즌부터 이민우가 이 번호를 달았고 2022년 이민우가 한화로 트레이드되면서 트레이드 상대인 김도현이 이 번호를 받았으며, 김도현이 시즌 도중 입대한 후에는 전역 후 복귀한 송후섭이 정식선수로 전환되면서 등번호를 물려받았지만, 2023시즌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윤도현이 이어받게 되었다.
윤도현은 2024시즌 내내 만성적인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정규리그 우승 후 콜업되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시즌 후 트레이드되어 KIA로 온 조상우에게 11번을 양보하며 2025시즌부터는 조상우가 이 번호를 달고 뛰게 됐다.
3.10. 13 [편집]
해태 타이거즈의 마당쇠이자 신고선수 성공신화의 주인공인 송유석의 등번호이다. 송유석이 1996 시즌 종료후 LG로 쫓겨나듯이 이적한 뒤에는 한동안 2군 선수가 달다가 2000년에는 잠수함투수인 성영재가 달았다. 다만 1년 만에 29번으로 바꾸며 비어있다가 시즌 말기에 삼성에서 이적한 이강철이 잠시 달았었다.
한동안 그저그런 선수들이 달다가 26번을 장문석에게 넘긴 홍세완이 2007~2010시즌에 달았다. 다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전성기 때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 했다. 이후에는 사이버 투수 김성계를 비롯한 무명 선수들이 달았고, 이후에는 강한울을 포함한 여러 선수들을 거쳐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이창진이 달았었고 2022년에는 김규성이 달았다가 2023년부터 신인 윤영철이 달고 있다.
한동안 그저그런 선수들이 달다가 26번을 장문석에게 넘긴 홍세완이 2007~2010시즌에 달았다. 다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전성기 때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 했다. 이후에는 사이버 투수 김성계를 비롯한 무명 선수들이 달았고, 이후에는 강한울을 포함한 여러 선수들을 거쳐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이창진이 달았었고 2022년에는 김규성이 달았다가 2023년부터 신인 윤영철이 달고 있다.
3.11. 14 [편집]
해태 타이거즈의 테이블 세터였던, 그리고 타이거즈 역사상 첫 신인왕 이순철을 대표하는 번호. 이순철이 내쫓기듯이 삼성에 간 이후로는 투수 박진철이 달았었다. 그 후 박진철의 트레이드 상대로 두산에서 넘어온 심재학이 달았다. 2008년 심재학이 시즌중 방출된 이후엔 박경태가 달았었다.
2012년부터 군에서 돌아온 진해수가 달았으나 2013년 5월 6일에 있었던 트레이드로 송은범이 달게 되었다. 그러나 송은범이 SK 시절에 달던 등번호였던 46번을 찾아가면서 한기주가 달게 되었다. 결국 송은범은 2013 그가 달았던 14번, 46번 전부 흑역사가 되어 21번을 달았지만 또 흑역사가 된다. 한기주 역시 이 번호를 SK에서 새로 온 김준에게 내주고 다시 17번을 찾았다. 그리고 김준은 아무 소식 없이 2군에만 있다가 신고선수가 되더니 방출되었다.
2020년부터는 내야 유망주인 김규성이 이 번호를 차지했다가 2022년부터는 한화에서 넘어온 강경학이 달기 시작했으나 시즌 도중 웨이버 공시되면서 결번이 되었다. 2023년부터 김규성이 다시 이 번호를 달게 됐다.
2012년부터 군에서 돌아온 진해수가 달았으나 2013년 5월 6일에 있었던 트레이드로 송은범이 달게 되었다. 그러나 송은범이 SK 시절에 달던 등번호였던 46번을 찾아가면서 한기주가 달게 되었다. 결국 송은범은 2013 그가 달았던 14번, 46번 전부 흑역사가 되어 21번을 달았지만 또 흑역사가 된다. 한기주 역시 이 번호를 SK에서 새로 온 김준에게 내주고 다시 17번을 찾았다. 그리고 김준은 아무 소식 없이 2군에만 있다가 신고선수가 되더니 방출되었다.
2020년부터는 내야 유망주인 김규성이 이 번호를 차지했다가 2022년부터는 한화에서 넘어온 강경학이 달기 시작했으나 시즌 도중 웨이버 공시되면서 결번이 되었다. 2023년부터 김규성이 다시 이 번호를 달게 됐다.
3.12. 15 [편집]
해태 시절에는 주동식 - 김평호 - 신동수가 달았으나, 재일교포 출신 잠수함 투수인 주동식을 제외하면 큰 임팩트는 없었다. 김평호는 주루코치로서의 능력이 더 유명하고 신동수는 평범했던 투수 1 정도로 기억에 남는 수준. 2000년대 들어서 강영식이 달았으나, 강영식을 아끼던 김응용 감독이 삼성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트레이드를 통해 강영식을 데려가면서 1년 만에 비었고, 박충식이 19번을 이강철에게 넘긴 이후에 달았으나 부상으로 일찍 은퇴했다.
이후 KIA 타이거즈에서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한 이용규의 등번호였으며, 이후 윤정우, 최정민 등을 거쳐 2020년에는 이준영이 달았고 2021년 20번으로 변경하였으며, 2021년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는 새 외인 다니엘 멩덴이 19번을 받았으나 21년 3월 18일 KT와의 시범경기에 15번 유니폼을 입고 나오면서 변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22년부터 박건우가 달게 되었으나 박건우가 시즌 도중 입대하면서 결번이 되었고 2023년에 신인 강병우가 이 번호를 받았으나 역시 시즌 도중 입대해 박정우가 2024 시즌에 이어받게 되었다.
3.13. 16 [편집]
타이거즈 원년 간판투수였던 이상윤과 고졸 신입으로 입단하여 1986년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쥔 문희수가 달았던 번호이지만, 비교적 늦은 시기에 타이거즈 야구를 접한 팬들에게는 1996년부터 타이거즈의 내야를 책임졌던 한 남자의 등번호로 기억되고 있다. 김종국 은퇴이후엔 투수 김희걸이 잠시 달았다. 그 뒤 조영훈이 몇달동안 달았는데, 은근히 김종국 당시 주루코치의 외모와 닮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2012년 FA 시장에서 KIA에 영입된 김주찬이 2013 시즌부터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김주찬은 2020 시즌 후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났다가 은퇴하게 되면서 이 번호는 21시즌부터 최원준이 달게 되었다. 최원준이 군 입대를 하게 되면서 2022년부터 장지수가 달게 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잠시 결번으로 처리되었지만, 최원준이 전역 후 다시 사용하다가 트레이드되어 현재는 결번이다.
2012년 FA 시장에서 KIA에 영입된 김주찬이 2013 시즌부터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김주찬은 2020 시즌 후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났다가 은퇴하게 되면서 이 번호는 21시즌부터 최원준이 달게 되었다. 최원준이 군 입대를 하게 되면서 2022년부터 장지수가 달게 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잠시 결번으로 처리되었지만, 최원준이 전역 후 다시 사용하다가 트레이드되어 현재는 결번이다.
3.14. 17 [편집]
90년대 중후반 선발에이스들이 달았던 번호. 원년부터 강만식이 달던 번호였으며, 조계현은 이번호를 달고 93, 94 2년연속 다승왕을 차지했며 팀의 93,96,97우승을 이끌었다. 조계현이 삼성으로 트레이드[23] 된 이후로는 곽현희가 달았다. 99년 11승으로 팀내 유일한 10승투수에 올랐으나 에이스라 부르기에 민망한 평균자책점(6.15)를 찍기도 했다.
그 이후에 이 번호를 단 선수들은 잊혀지다가 2013시즌 한기주가 이 번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2013년 7월에 있었던 연쇄 번호이동으로 내야수 홍재호가 달게 된다. 홍재호의 군입대 이후로 다시 한기주가 찾았지만 2020시즌부터는 임기영이 사용한다.
그 이후에 이 번호를 단 선수들은 잊혀지다가 2013시즌 한기주가 이 번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2013년 7월에 있었던 연쇄 번호이동으로 내야수 홍재호가 달게 된다. 홍재호의 군입대 이후로 다시 한기주가 찾았지만 2020시즌부터는 임기영이 사용한다.
3.15. 18 [편집]
장진범이 달았으나, 김응용 감독의 지시로 등번호를 바꾸게 되었다. 이유는 광주일고 -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후 입단한 투수 특급 유망주 때문. 그 유망주가 바로 80년대 중반~90년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투수 선동열이다. 1996년 1월, 선동열이 주니치 드래곤즈로 임대되어 해태를 떠난 뒤 KBO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KIA 타이거즈로 간판이 바뀌었을 2001년 당시, KIA 프런트가 해태 색깔 지우기의 일환으로 영구 결번을 해제시키려 했던 병크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프런트는 특급 신인이었던 김진우에게 이 번호를 주려 했지만,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18번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선동열이 KIA의 새 감독으로 부임할 때 해당 등번호를 주는 것도 고려했지만 영구 결번의 취지를 보호하기 위해 '감독' 선동열은 90번을 달았다. 한때 선 감독의 유임 소식이 전해지고 안치홍에게 군 입대를 만류할 때 '임의탈퇴'라는 말을 꺼낸 것이 문제가 되자 팬들이 선 감독의 영구 결번을 빼앗아야 한다는 강경 반응도 있었을 정도였다.[24]
KIA 타이거즈로 간판이 바뀌었을 2001년 당시, KIA 프런트가 해태 색깔 지우기의 일환으로 영구 결번을 해제시키려 했던 병크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프런트는 특급 신인이었던 김진우에게 이 번호를 주려 했지만, 여론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18번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선동열이 KIA의 새 감독으로 부임할 때 해당 등번호를 주는 것도 고려했지만 영구 결번의 취지를 보호하기 위해 '감독' 선동열은 90번을 달았다. 한때 선 감독의 유임 소식이 전해지고 안치홍에게 군 입대를 만류할 때 '임의탈퇴'라는 말을 꺼낸 것이 문제가 되자 팬들이 선 감독의 영구 결번을 빼앗아야 한다는 강경 반응도 있었을 정도였다.[24]
3.16. 19 [편집]
언더핸드 투수임에도 강속구로 윽박지르고 선발투수로도 활동했던 이강철이 해태 시절 달았던 이후 타이거즈 내에서는 타이거즈 잠수함의 대표적 번호가 된 듯 하다. 삼성 라이온즈의 원조 라이온킹 박충식이 보상선수가 되어 타이거즈로 오면서 달았으나, 이강철이 돌아오면서 다시 등번호를 돌려주었다.[25]
이강철은 2005년을 끝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이 번호를 달았다. 이강철 이후 신용운-손영민으로 계보가 이어지다 손영민의 불미스런 임의탈퇴 이후 2013년부터 좌완 손동욱이 달게 되면서 그 계보가 끊어졌다. 이후 최영필이 달면서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최영필은 우완. 하지만 손영민이 2018년에 이 번호를 다시 달며 계보를 이었고, 2019년 우완투수 이민우가 달면서 계보가 잠시 끊어졌으나 2020년 사이드암 박정수가 이 번호를 달게 되면서 옆구리 계보가 재부활하는 듯했다.
그러나 2020년 이 번호를 달았던 우완 사이드암 투수인 박정수가 시즌 중반 트레이드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였고, 박정수의 반대급부인 김태진이 해당 번호를 달게 되면서 아예 투수가 아닌 타자가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가 2021년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는 새 외인 다니엘 멩덴이 이 번호를 달면서 다시 투수의 등번호가 되었으나 21년 3월 18일 KT와의 시범경기에 15번 유니폼을 입고 나오면서 공석이 되었다가 윤중현이 정식 선수로 등록되면서 이 번호를 달게 됐다.
이강철은 2005년을 끝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이 번호를 달았다. 이강철 이후 신용운-손영민으로 계보가 이어지다 손영민의 불미스런 임의탈퇴 이후 2013년부터 좌완 손동욱이 달게 되면서 그 계보가 끊어졌다. 이후 최영필이 달면서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최영필은 우완. 하지만 손영민이 2018년에 이 번호를 다시 달며 계보를 이었고, 2019년 우완투수 이민우가 달면서 계보가 잠시 끊어졌으나 2020년 사이드암 박정수가 이 번호를 달게 되면서 옆구리 계보가 재부활하는 듯했다.
그러나 2020년 이 번호를 달았던 우완 사이드암 투수인 박정수가 시즌 중반 트레이드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였고, 박정수의 반대급부인 김태진이 해당 번호를 달게 되면서 아예 투수가 아닌 타자가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가 2021년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는 새 외인 다니엘 멩덴이 이 번호를 달면서 다시 투수의 등번호가 되었으나 21년 3월 18일 KT와의 시범경기에 15번 유니폼을 입고 나오면서 공석이 되었다가 윤중현이 정식 선수로 등록되면서 이 번호를 달게 됐다.
3.17. 20 [편집]
3.18. 22 [편집]
3.19. 25 [편집]
해태의 백업포수가 달던 번호. 1980년대는 재일교포 출신 포수인 김무종이 달았었다. 그 후 1990년에 정회열이 입단하면서 25번을 받았다. 정회열이 장채근이 부진하던 93년에 마스크를 받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정회열이 떠난 이후에는 그저 그런 선수들이 달다가 신동주가 2001년에 잠깐 달았다. 자세한 내용은 37번 참고.
그 후 2002년 포수 강화 목적을 위해[27] 3억을 주고 현대에서 영입한 이재주가 달았으며, 고우석[28]을 거쳐서 2011년부터 KIA로 이적해온 이범호가 달았다. 그리고 2019년 7월 13일, 이범호가 은퇴하면서 박찬호에게 계승되었다. 2022년부터 이우성이 달게 되었다.
현재는 트레이드로 기아에 오게 된 한재승이 달고있다.
그 후 2002년 포수 강화 목적을 위해[27] 3억을 주고 현대에서 영입한 이재주가 달았으며, 고우석[28]을 거쳐서 2011년부터 KIA로 이적해온 이범호가 달았다. 그리고 2019년 7월 13일, 이범호가 은퇴하면서 박찬호에게 계승되었다. 2022년부터 이우성이 달게 되었다.
현재는 트레이드로 기아에 오게 된 한재승이 달고있다.
3.20. 26 [편집]
조계현이 신인 시절 잠시 달았다가 90년대 타이거즈의 또다른 에이스 이대진이 달았던 번호. 그는 97시즌 17승을 거두며 KBO 골든글러브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이대진은 김상진을 기리기 위해 11번을 달았고 그 번호는 신인 홍세완이 달게 되었다. 홍세완은 03시즌 유격수 최초로 100타점을 달성하며 골든글러브를 차지하였으나, 광주 무등구장의 넘사벽급 인조잔디로 인해 이후 부상에 시달리며 시름시름하다 결국 은퇴하게 된다. 중간에 13번으로 바꾸면서 장문석이 달았으나 장문석은 김성근 - 이순철을 겪으면서 제대로 던지지도 못 했다.
2010년부터 서재응이 달기 시작했으나, 2015년이 끝나고 은퇴를 했고, 제대한 손영민이 2017년부터 이어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임기준이 달았고, 임기준이 방출된 후 2021시즌부터는 남재현이 등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한승혁이 달게 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1년만에 결번이 되었고 2023년부터 한승택이 사용하고 있다.
2010년부터 서재응이 달기 시작했으나, 2015년이 끝나고 은퇴를 했고, 제대한 손영민이 2017년부터 이어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임기준이 달았고, 임기준이 방출된 후 2021시즌부터는 남재현이 등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한승혁이 달게 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1년만에 결번이 되었고 2023년부터 한승택이 사용하고 있다.
3.21. 27 [편집]
타이거즈 원년 홈런왕 김봉연이 처음 단 이후 타이거즈의 강타자를 상징하는 등번호가 되었다. 그 이후 김봉연이 매우 아꼈던 후배 이호성에게 27번을 물려주면서[29] 시작되었던 강타자 계보는 투수 강철민과 호세 리마에서 잠시 끊어졌고, LG 트윈스-KIA 타이거즈 간의 트레이드로 타이거즈에 복귀한 김상현이 이 번호를 달게 되면서 다시 이어지게 되었는가 했다.
2013년 5월 6일 김상현이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신승현이 27번을 달게 되었고, 신승현이 1년도 안 되어 팀을 떠난 뒤에는 개명 전 김상현이 달게 된다. 하지만, 27번 강타자계보는 여전히 끊어졌다. 그리고 김태영은 15시즌의 부진으로 인해서 신고선수로 강등되었다. 따라서 주인이 없다.
2013년 5월 6일 김상현이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신승현이 27번을 달게 되었고, 신승현이 1년도 안 되어 팀을 떠난 뒤에는 개명 전 김상현이 달게 된다. 하지만, 27번 강타자계보는 여전히 끊어졌다. 그리고 김태영은 15시즌의 부진으로 인해서 신고선수로 강등되었다. 따라서 주인이 없다.
그리고 그 선수 이후로 저주를 엄청 받게 되었는지 이 번호를 달은 선수들의 결말이 좋지 못했다. 그 선수 이후로 등번호를 차지한 강철민은 만년 유망주 취급받다가 LG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사이버 투수로 전락하면서 은퇴, 호세 리마는 방출 이후 심장마비로 돌연사했다. 강철민의 반대급부로 넘어온 김상현은 SK 트레이드 이후 부진하다가 kt로 이적하면서 부활하는듯 싶었지만 음란행위를 저지르면서 임의탈퇴, 김태영은 위에 언급한 것 처럼 부상으로 재활하다 방출되었다. 또한 한 때 이 번호를 달던 이명기도 트레이드된 NC에서 방역수칙을 위반하여 72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1000만원이 부과되었다. 이처럼 한 번호에서 범법자만 3명, 불혹이거나 불혹도 안된 나이에 고인이 된 자만 2명이 나오고 나머지 선수들의 악재도 많았기 때문에 KIA 팬들 사이에선 농담반 진담반으로 결번처리 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30]
2016년 12월 6일 포수 이홍구가 FA로 영입된 외야수 최형우에게 34번을 넘겨주고 공석이 된 27번을 선택하였는데, 바로 트레이드 상대가 되면서 이명기가 달게 되었고, 2019시즌 이명기가 등번호를 변경한 뒤 트레이드로 KIA에 온 문선재가 달게 되었지만, 웨이버 공시가 되면서 결번이 되었다가 상무에서 전역한 강이준이 2021년 8월 11일부터 달게 됐다. 2022년부터는 이전부터 마이크 트라웃을 좋아했던 김호령이 달게 되었다.
2016년 12월 6일 포수 이홍구가 FA로 영입된 외야수 최형우에게 34번을 넘겨주고 공석이 된 27번을 선택하였는데, 바로 트레이드 상대가 되면서 이명기가 달게 되었고, 2019시즌 이명기가 등번호를 변경한 뒤 트레이드로 KIA에 온 문선재가 달게 되었지만, 웨이버 공시가 되면서 결번이 되었다가 상무에서 전역한 강이준이 2021년 8월 11일부터 달게 됐다. 2022년부터는 이전부터 마이크 트라웃을 좋아했던 김호령이 달게 되었다.
3.22. 29 [편집]
KIA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레전드 나지완의 등번호이다. 1980년대에는 투수 김용남이 달았고, 이후에는 그저 그런 선수들이 달았다. 대체적으로 이름이 없지 않은 선수들이나 기대주가 달았지만 기대에 전부 못 미쳤다. 1994년에 고졸연고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이호준이 달았으나 투수로서 보여준 성적은 처참했고, 이원식은 2차 1라운드에서 뽑은 선수였음에도 족적을 남기지 못 했다.[31] 숀 헤어는 시원하게 망했고, 권명철은 최훈재를 내주고 투수 보강을 위해 데려왔지만 부상으로 재활하느라 나오지도 못 했다.
성영재가 나름 제 몫을 하나 싶었지만 일찌감치 하락세가 찾아왔고, 2003년에 1차 지명으로 영입한 고우석[32]이 달았으나, 2년차 징크스 이후로 입대했다. 이후 김경언이 달았지만, 1군에 올라오지도 못 했다. 이후 나지완이 2008년 김경언으로부터 29번을 물려받은 후 2022년 은퇴할 때까지 장장 15년간 이 등번호를 사용했다. 나지완이 은퇴한 후에는 투수 박일훈이 등번호를 물려받았다.
2023시즌 종료 후 박일훈이 방출되었고 변우혁이 2024시즌부터 29번을 달고 뛰게 되었다.
성영재가 나름 제 몫을 하나 싶었지만 일찌감치 하락세가 찾아왔고, 2003년에 1차 지명으로 영입한 고우석[32]이 달았으나, 2년차 징크스 이후로 입대했다. 이후 김경언이 달았지만, 1군에 올라오지도 못 했다. 이후 나지완이 2008년 김경언으로부터 29번을 물려받은 후 2022년 은퇴할 때까지 장장 15년간 이 등번호를 사용했다. 나지완이 은퇴한 후에는 투수 박일훈이 등번호를 물려받았다.
2023시즌 종료 후 박일훈이 방출되었고 변우혁이 2024시즌부터 29번을 달고 뛰게 되었다.
3.23. 32 [편집]
3.24. 33 [편집]
해태 시절부터 보면 양승호, 서정환, 장정석 등 요즘 야구팬들에게도 익숙한 여러 지도자들이 선수 시절 거쳐갔던 등번호였고, 김인식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해태 수석코치 시절 사용하기도 하였다. 2007년부터는 만년 유망주 김주형이 달던 번호였고 현재도 김주형의 번호로 가장 유명하다. 2019년 김주형이 방출된 후에는 유재신이 이 번호를 달았다가[33] 1년 후 방출되었다. 그 후 또다른 만년 유망주 장영석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그리고 장영석도 1년 후 방출되었고, 이후 2021시즌 중 군대에서 전역한 포수 신범수가 이 번호를 가져갔다가 시즌이 끝나고 22번으로 변경하면서, 2022년부터는 또다른 만년 유망주 오선우가 달게 되었다가 2023년부터는 한화에서 트레이드로 넘어온 또다른 만년 유망주 변우혁이 사용한다. 계속 만년 유망주에게 33번이 가고 33번을 단 선수들의 부진이 이어지자 27번과 함께 KIA팬들에게 불길한 번호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후 변우혁이 29번으로 바꾸면서 두산에서 온 이형범이 2024시즌부터 달게 되었고, 2025년부터는 외국인 투수 아담 올러가 사용하며 괜찮은 활약으로 33번의 저주를 마침내 깨었다.
3.25. 34 [편집]
3.26. 37 [편집]
90년대 초반까진 코칭스태프가 쓰다가[34] 이후 임창용이 달게된 번호[35]로서 임창용은 이번호로 창용불패의 신화를 쓰다가 돈 없는 구단 탓에 삼성 라이온즈로 팔려간다.
이후 곽채진과 신동주가 이 번호를 달았다. 신동주는 2000년대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한 팬이라면 그저 그런 타자로 인식할 수 있으나 90년대 후반에는 대단한 타자였다. 어느 정도 였나면, 20-20을 하면서 외야수비도 평균이상이었기에 여러모로 가치가 높은 호타준족 외야수였다. 임창용은 삼성 이적 후 등번호를 39번을 달아야했는데, 이는 이미 신동주가 달고 있었기 때문, 결국 신동주가 기아로 이적한 2002년부터 37번으로 등번호를 교체한다. [36][37]
임창용이 18년만에 타이거즈로 돌아온 뒤에도 37번이 아닌 육성선수 번호인 037을 거쳐서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의 번호인 12번을 쓰게 되었다. 임창용이 12번을 달면서 임창용의 상징과도 같았던 37번은 배힘찬이 달고 본래 37번을 달던 신창호는 44번으로 달았으나, 2016 시즌 후 방출되었다. 이후 이우성, 놀린 등을 거쳐 2023년에는 신인 김세일에게 번호가 돌아갔으나 김세일이 시즌 중 군에 입대하면서 결번이 되었다. 2024시즌부터는 박민이 달고 있다.
양현종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이거즈에 입단한 뒤 2년간 달았던 번호가 이 번호였다.
이후 곽채진과 신동주가 이 번호를 달았다. 신동주는 2000년대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한 팬이라면 그저 그런 타자로 인식할 수 있으나 90년대 후반에는 대단한 타자였다. 어느 정도 였나면, 20-20을 하면서 외야수비도 평균이상이었기에 여러모로 가치가 높은 호타준족 외야수였다. 임창용은 삼성 이적 후 등번호를 39번을 달아야했는데, 이는 이미 신동주가 달고 있었기 때문, 결국 신동주가 기아로 이적한 2002년부터 37번으로 등번호를 교체한다. [36][37]
임창용이 18년만에 타이거즈로 돌아온 뒤에도 37번이 아닌 육성선수 번호인 037을 거쳐서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의 번호인 12번을 쓰게 되었다. 임창용이 12번을 달면서 임창용의 상징과도 같았던 37번은 배힘찬이 달고 본래 37번을 달던 신창호는 44번으로 달았으나, 2016 시즌 후 방출되었다. 이후 이우성, 놀린 등을 거쳐 2023년에는 신인 김세일에게 번호가 돌아갔으나 김세일이 시즌 중 군에 입대하면서 결번이 되었다. 2024시즌부터는 박민이 달고 있다.
양현종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이거즈에 입단한 뒤 2년간 달았던 번호가 이 번호였다.
3.27. 38 [편집]
나름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던시절의 해태타선을 이끌던 이호준의 번호였다.[38] 이호준과 성영재의 트레이드는 타이거즈 역사상 후회될 트레이드.. 그도 그럴 것이 해태를 인수한 기아시절 초반 2년 연속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하며 나름 잘 나갔는데 이 팀의 약점은 4번타자가 부실했다는 것이었고, 02~04시즌 이호준은 3년 도합 99홈런, 278타점을 기록하며 포텐을 터뜨리고 말았다. 마해영, 양준혁 등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았으며 같은 기간 타이거즈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선수는 도합 59홈런을 기록한 장성호였다. 이 선수가 계속 해태-기아에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야구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거기에 트레이드 상대인 성영재가 병역비리로 수감되었고, 그 후 성적부진으로 인해 2년만에 방출된 것을 생각하면 크게 말아먹은 트레이드였다.
이호준 이후 투수 오우진, 손혁, 소소경이 38번을 달았으며, 2005 시즌 홍현우가 LG에서 돌아와서 달기도 했었지만 그 시즌 끝나고 소리없이 은퇴했다. 그 뒤로 그저 그런 선수들을 거쳐 박준표가 이 번호를 달고 뛰다가 2016 시즌이 끝난 뒤 입대했고 이어서 임기영이 이 번호를 달았다. 2020년부터는 김현준이 38번을 달고 있었으나 2022년 가정사로 은퇴하면서 결번이 되었다가 2023년에 신인 김찬민이 받았다.
이호준 이후 투수 오우진, 손혁, 소소경이 38번을 달았으며, 2005 시즌 홍현우가 LG에서 돌아와서 달기도 했었지만 그 시즌 끝나고 소리없이 은퇴했다. 그 뒤로 그저 그런 선수들을 거쳐 박준표가 이 번호를 달고 뛰다가 2016 시즌이 끝난 뒤 입대했고 이어서 임기영이 이 번호를 달았다. 2020년부터는 김현준이 38번을 달고 있었으나 2022년 가정사로 은퇴하면서 결번이 되었다가 2023년에 신인 김찬민이 받았다.
3.28. 39 [편집]
1983-1995시즌에는 김응용 감독이 이 등번호를 달았다. 김응용 감독은 이 번호를 달고 7회우승을 달성했다.
1996년 김감독이 70번으로 등번호를 바꾸면서, 당시 만년 유망주인 최향남이 달았었다. 1997년 최향남이 LG로 떠나고, 1998년에 잠시 엄병열이 달았다가 1999시즌부터는 유동훈이 달았다.[39] 유동훈의 은퇴 이후 비슷한 사이드암인 2015년 신인 박정수가 달게 되었다가, 군 입대로 2016년에는 박동민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이후 좌완 투수인 하준영이 달고 있다. 하지만 나성범의 보상선수로 NC로 이적하면서 다시 비게 되었다. 2022년부터 최지민이 사용하고 있다.
1996년 김감독이 70번으로 등번호를 바꾸면서, 당시 만년 유망주인 최향남이 달았었다. 1997년 최향남이 LG로 떠나고, 1998년에 잠시 엄병열이 달았다가 1999시즌부터는 유동훈이 달았다.[39] 유동훈의 은퇴 이후 비슷한 사이드암인 2015년 신인 박정수가 달게 되었다가, 군 입대로 2016년에는 박동민이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이후 좌완 투수인 하준영이 달고 있다. 하지만 나성범의 보상선수로 NC로 이적하면서 다시 비게 되었다. 2022년부터 최지민이 사용하고 있다.
3.29. 43 [편집]
3.30. 47 [편집]
3.31. 48 [편집]
3.32. 51 [편집]
우투좌타 외야수로서 팀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했던 김원섭이 2004년부터 14시즌동안 달았던 등번호. 투구 인터벌이 길기로 소문난 좌완 강태원의 신인 시절 번호이기도 했다. 1996년에는 입단 테스트를 통해 입단한 정윤현이라는 재미교포 출신 무명 투수가 이 번호를 달았다. 참고로 정윤현이라는 이름의 이 선수는 훗날 롯데 자이언츠에서 제리 로이스터의 통역이자 보좌역 역할을 맡게 되는 재미교포 야구인 커티스 정이다.
김원섭이 은퇴한 후에는 홍건희가 이 번호를 달았다. 2020년 홍건희가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후 트레이드 상대인 류지혁이 잠시 이 번호를 달았다가 류지혁이 8번을 가져가자 전상현이 이 번호를 달았다.
김원섭이 은퇴한 후에는 홍건희가 이 번호를 달았다. 2020년 홍건희가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후 트레이드 상대인 류지혁이 잠시 이 번호를 달았다가 류지혁이 8번을 가져가자 전상현이 이 번호를 달았다.
3.33. 54 [편집]
좌완 에이스로 성장하여 프랜차이즈 레전드가 된 양현종의 등번호. 본래는, 절친인 포수 이준수가 달았으나, 방출되자 양현종이 친구가 달던 54번을 달았다고 한다. 이후 이준수는 KIA에서 방출된 뒤 한화에 입단해서도 54번을 달았다.[40] 양현종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후에는 임시로 결번 처리됐으며[41] 2022년 팀에 복귀하며 다시 54번을 사용하게 되었다. 양현종의 구단 내 위상이 결번급이지만 영구 결번이 되지 않은 해태 타이거즈 시절 레전드들 이상으로까지 여겨지기에 팬들 사이에서는 당장 은퇴해도 영구 결번이라 불리고 있다.[42]
3.34. 70 [편집]
3.35. 74 [편집]
김종국이 2014년 1군 주루코치부터 시작해 감독 시절까지 달던 번호였다. 그러나 2024년 1월 24일에 배임 수재 혐의가 발각돼 직무 정지를 거쳐 계약을 해지함에 따라 저주받은 결번이 되었다가 김주찬이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돌아오면서 이 번호를 달게 되었다.
[1] 해태, KIA 커리어만으로 WAR 10 이상을 달성한 경우만을 만족한 경우인데 등번호를 여러 개 사용한 선수는 사용기간 동안 가장 높은 WAR을 쌓았던 등번호에만 볼드체할 것. 예를 들어 김진우의 경우 KIA 타이거즈 선수로 위 조건 중 WAR 10 이상만을 달성하였고 7개의 등번호를 달았지만, 등번호 55번을 달았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쌓은 WAR이 가장 높기 때문에 등번호 55번만을 볼드체한다.[임시결번1] 2.1 2.2 2.3 2.4 군입대 기간동안 임시결번[4]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후 첫 풀타임 시즌을 맞이한 KIA가 이 해 데뷔한 김진우에게 18번을 주려고 했으나 팬들의 반발로 백지화했다.[임시결번2] 미국 진출 기간동안 임시결번[8] 프로데뷔는 1996년이나 등번호 1번을 달은 것은 1997년부터 2010년까지 12년 반 정도이다.[9] 김일권과 조충열은 1983년 한정으로 서로 등번호를 맞바꿨다가 1984년부터는 다시 전처럼 돌아갔다.[10] 한편 LG 트윈스에서 버려지듯이 트레이드 되어 KIA로 복귀한 후에는 38번을 달았으며, 부진을 만회하지 못 하고 1년만에 방출되어 큰 의미는 없었다.[11] 해즐베이커와 이우성은 외야수였다.[12] 물론 이종범 혼자만의 활약으로 7번이라는 번호가 유격수의 상징적 번호가 된 것은 아니다. 이종범의 이전에는 김재박이 있었고 이종범의 이후에도 박진만이 7번을 달았다. 7번의 원조는 김재박인 셈.[13] 이후 장일현은 55번을 달았다. 프로에서는 아마 시절의 기대에 비해서 못 미쳤다는 평이 많다.[14] 청각장애는 아니다. 박재용 본인도 전설의 타이거즈 등에서 난청이 심할 뿐이지 청각장애까지는 아니었다고 밝혔다.[15] 물론 이 골든글러브는 논쟁거리이긴 하다. 표면적인 성적만 놓고 보면 수상이 불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 물론 당대의 훌륭한 타자들이 각자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명타자 포지션을 가지고 고정적으로 출장한 선수들의 상태가 전부 시원찮았고 그 중에서 그나마 준수했던데다가 우승 버프까지 있던 박재용이 2년 연속으로 받은 것에 가깝다.[16] 보통 트레이드된 선수는 시즌 중반에 팀에 합류하기 때문에 이미 시즌 전 등번호 정리가 끝난 상황에서 본인이 원하는 등번호를 바로 얻는 게 쉽지 않다. 또한 트레이드 자원은 트레이드 다음날 경기에 출장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보통은 자신과 트레이드된 선수의 등번호를 받아 당해년도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그 번호를 사용하고 시즌이 끝난 후 선수들과의 조정을 통해 바꾸는 경우가 많다. 이적해오자마자 원하는 등번호가 비어 있었던 류지혁의 경우가 특수한 것.[17] 다만 1989년 이전까지는 48번을 달았다. 1군 백업요원으로 포지션이 확고해지면서 9번을 받은 것.[18] 박노준 - 정성룡이 보여준 족적이 적은 편이지만, 장성호 - 최훈재 - 양준혁이 타이거즈에서 보여준 모습은 제법 인상적이었다.[19] 한기주의 영향인 듯 싶다.[20] 해태 타이거즈 홈페이지 명예의 전당에 모셔진 선수가 김성한 혼자였다.[21] 김성한 감독이 시범 삼아서 1군에 올리기는 했지만, 몸 상태가 비정상이었던 만큼 성적도 처참했다. 진흥고 시절에 가지고 있던 타자로서의 재능도 투수로 활동하면서 많이 무뎌지기도 했다..[22]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지만, 1년 후 KBO 2차 드래프트로 다시 NC 다이노스로 이적했지만 2015시즌중 방출되었다.[23] 1억5천만원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항명파동 연루자인 조계현 털어내기+현금확보의 목적이 있었다.[24] 실제로 OB 감독이었던 윤동균은 1994년 항명 사건이 계기가 되어 영구 결번을 실제로 빼앗긴 사례가 있다.[25] 박충식은 15번으로 등번호를 옮긴다.[26] 다만 12번은 백업포수가 다는 등번호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12번을 달던 시절의 김상훈은 최해식 백업이었고, 차일목도 상황은 비슷했으니.[27] 최해식이 부상으로 은퇴하면서 김상훈의 백업을 할만한 포수가 없었기 때문. 김지영, 황성기 등의 육성은 실패했다.[28] LG 트윈스의 마무리 투수였던 고우석과 동명이인이다.[29] 그 이유 때문에 이호성이 네 모녀를 살인하고 그 자신도 목숨을 끊었을 때 김봉연 교수가 매우 애통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30]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단군매치를 벌였던 상대팀인 서울의 모 구단도 27번을 단 선수들이 죄다 도핑에 걸린 경험이 있다[31] 이 선수는 이용규를 얻기 위해서 사용된 재료 정도로만 기억되는 것이 현실.[32] 설상가상으로 은퇴하고 조직폭력배로 전업을 해서 존재 자체가 흑역사가 되었다.[33] 33번은 유재신의 아버지인 유두열의 현역 시절 등번호이기도 하다.[34] 김봉연, 정현발 코치가 37번을 달았었다.[35] 신인시절한정 57번[36] 그러나 임창용의 애니콜 이미지는 39번이 여러모로 강하다.[37] 신동주가 마해영의 보상선수가 되어 삼성으로 이적한 후에는 임창용이 37번을 달고 있어서 40번을 달아야했다.[38] 신인시절 한정 29번. 타자 전향과 함께 등번호를 바꿨다.[39] 유동훈이 병풍사건으로 인해 군문제가 걸리자, 군대 간 동안에는 손영민이 39번을 달았었다.[40] 그러나 마지막 소속팀이었던 kt에서는 97번과 42번을 사용했다.[41] 비슷한 시기의 같은 사례로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에서 김광현이 사용하는 등번호인 29번이 있다.[42] 영구 결번 0순위로 꼽히는 김응용, 김성한, 이강철 중 김응용 감독엔 못 미치더라도 김성한, 이강철과는 동급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이강철 감독의 각종 통산 기록을 넘어서기도 했고.[43] 이 시즌부터 해태 유니폼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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